ISIL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쿠르드 여성에 대한 환상
2014년 11월 28일  |  By:   |  세계, 칼럼  |  No Comment

한 쿠르드족 여성이 혼자서 ISIL 대원을 백 명도 넘게 사살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레하나(Rehana)라는 이름의 이 젊은 여성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전투복을 입고 소총을 든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레하나의 사진은 소셜미디어상에서 널리 퍼지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것도 여성들을 강간하고, 노예로 사고판다는 집단에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라니, 누구나 호들갑 떨기에 좋은 소재입니다. 패션 잡지들조차 “매력적인” 쿠르드 여군을 골라 인터뷰하고, 이들에게 멋진 아마조네스의 이미지를 덧입히죠.

그러나 쿠르드족 여군 부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피상적인 차원에서 그치고 있으며, 이 용감한 여성들이 실제로 어떤 상황에 처해있으며 왜 싸우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이 여성들은 동양의 여성이 억압받는 희생자라는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으면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적 판타지처럼 보입니다. 또한, 이들의 투쟁에는 정치적, 이념적으로 복잡한 배경이 있고, 이들은 ISIL가 주목받기 전부터 수십 년 간 싸워왔지만, 요즘 미디어에서 이들은 오로지 ‘ISIL의 적’으로 그려집니다.

이제 와 이 여성들이 갑작스러운 주목을 받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세대 쿠르드인들에게 여성도 총을 들고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현재 쿠르드 여군은 ISIL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뿐 아니라 터키와 이란에서도 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쿠르드 족의 역사에는 여성 전사나 지도자의 사례가 여럿 있습니다. 19세기, 당시로써는 드물게 700명 규모의 대대에 43명의 여군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1970년대에는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학생 운동에 참여했다가 22세의 나이로 사형당한 여성도 있었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쿠르드족 사회를 양성평등의 사회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는 쿠르드족 여군은 15,000명가량이며, 이들은 쿠르드 노동당(PKK)과 긴밀하게 연계된 조직입니다. 현재 ISIL에 맞서 가장 강력한 대항 전선을 구축하고 있지만, 터키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분류되고 있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PKK는 여성 해방을 당의 공식 노선으로 채택하고 있는 조직입니다. 한 자리를 여성과 남성이 공동으로 채워야 한다는 쿼터제가 있어, 당 간부의 절반 가까이가 여성이죠. 덕분에 터키의 국회와 정부에 진출해있는 여성의 다수가 쿠르드족입니다. 이라크에서도 쿠르드족 여성들의 활약은 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7, 80년대에는 많은 여성이 남편과 나란히 사담 후세인 정권에 맞서 싸웠죠.

쿠르드족 내부의 여러 정치 세력과 그 역사, 그리고 그 사회에서 여성들이 해온 역할에 대한 이해 없이 쏟아지고 있는 현재의 관심은 홍보성 반짝 유행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수십 년간 미디어의 관심을 조금도 받지 못한 채 싸워왔습니다. 지금 코바니에서 쿠르드족 여군들이 활약할 수 있는 것도 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이들의 역할이 정립되었기 때문이죠. 쿠르드족의 저항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들을 ISIL의 저항군으로 추켜세우는 것은 이 여성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소셜미디어상에서 미녀 군인의 사진이 인기를 끌어도, 이들은 터키, EU와 미국에 의해 테러 집단으로 낙인찍혀 있다는 사실은 함께 유통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이들의 용맹함에 감동을 받았다면, 쿠르드족이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알자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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