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부적절한’ 셔츠 소동과 변질된 페미니즘
2014년 11월 21일  |  By:   |  세계, 칼럼  |  4 Comments

로제타 위성의 혜성 탐사 작전에 참여한 과학자 맷 테일러(Matt Taylor)는 최근 과학적 성취가 아닌 괴상한 셔츠 덕에 호된 유명세를 누렸습니다. 헐벗은 여성들이 잔뜩 그려진 셔츠를 입고 공개 석상에 나왔다가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을 한몸에 받은 테일러는 결국 TV에 출연해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번 해프닝을 페미니즘의 승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유명 과학자에게 눈물의 사과까지 받아내다니, 페미니스트들의 영향력이 대단해졌다고 말이죠. 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번 일은 페미니즘의 전술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양성 불평등의 근본적인 이유를 따지기보다는 개인을 악당으로 만들어 공격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 상의 마녀 재판을 통해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 연예인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는 일은 최근 들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성 혐오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기술을 강의한다는 유명 “픽업 아티스트” 줄리엔 블랑(Julien Blanc)은 탄원 운동의 결과로 호주에서 추방되었고, 영국과 캐나다도 입국 금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블랑에게 영국 비자를 주지 말라는 탄원서에는 지금까지 무려 15만 6천여 명이 서명했습니다. 반면 여성 수감자 인권 침해로 악명이 높은 불법 이민자 수감 시설을 폐쇄하자는 탄원서는 올 한 해 동안 5만 명의 서명도 채 받아내질 못했죠.

이처럼 위대한 사회운동인 페미니즘은 오늘날 변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악당이라도 일개 개인을 공격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페미니즘이 지난하고 고된 노력을 통해 제도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길을 스스로 포기했음을 의미합니다. 과거 페미니스트들은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수십 년에 걸친 투쟁도 마다치 않았습니다. 일례로 1990년대 초반 배우자에 의한 강간이 범죄로 인정된 일은  7,80년대에 걸친 오랜 투쟁의 결과였죠. 여성 비하적인 옷을 만드는 의류 업체를 비난하지 않고 그 옷을 사 입은 한 사람을 망신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길일까요? 강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미식축구 선수 한 사람을 매장하는 것이 풋볼계 전반에 만연한 여성 혐오적 문화를 비판하는 일보다 중요할까요?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매카시즘적 경향은 정치나 토론보다는 탄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불쾌하니 금지하라”는 식의 접근법은 진보적인 정치 운동이라기보다 검열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페미니즘은 과거 국가의 제도와 거대 기업을 상대로 투쟁을 벌인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차별적인 언행을 보일 때, 이는 그 개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언제나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 분위기나 문화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고 공격하여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페미니스트 운동의 진정한 정신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칼럼 출처: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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