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동안 뉴욕 거리를 걸었더니…”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연구 방법 오류
2014년 11월 11일  |  By:   |  세계  |  4 Comments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말그대로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희롱, 괴롭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인 홀라백(Hollaback)이 제작한 영상은 매력적인 한 여성이 뉴욕 거리 ‘곳곳’을 10시간 동안 걸으면서 ‘뭇’ 남성들에게 희롱 내지 이른바 집적임을 당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2분 남짓한 길이로 편집된 영상 최종본의 마지막에 그녀는 “모든 배경의 사람(people of all backgrounds)”으로부터 희롱을 당했다고 명시됩니다. 하지만 영상을 보고 있으면 이내 그녀에게 다가오거나 말을 거는 이들은 ‘모든 종류의’, ‘뭇’ 남성이 아닙니다. 이 가운데 압도적인 비율은 유색인종 남성, 그 중에서도 특히 흑인 남성입니다. 실제 상황을 촬영해 가설(매력적인 백인 여성은 뉴욕에서 언어 희롱을 당한다)을 증명하는 건 분명 하나의 연구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을 따라 결과로 나온 것이 이 동영상이죠. 하지만 이 연구는 방법론 측면에서 여러 가지 명백한 오류를 범하며 유색인종 남성이 여성에게 더 집적거리는 듯한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습니다. 엄격한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지 않으면 똑같은 사례를 모으고 데이터를 분석하더라도 편향된 사례에 휘둘리거나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이 동영상에서 우리가 데이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례들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분명 동영상을 보면, 이 여성에게 집적거리는 건 십중팔구 흑인 남성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보죠.

1. 매력적인 백인 여성에게 말을 걸거나 희롱을 하는 등 집적거리는 건 유색인종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영상 속 장면들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 결과물이 되겠죠.

2. 실제로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남성이 이 여성에게 말을 걸로 다가왔는데,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흑인 남성이 더 많이 집적거린 것처럼 동영상이 편집됐을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의식이 반영돼 의도적인 편집이 있었을 수도 있고, 다른 세부적인 방법에서 불거진 문제가 겹쳐 이런 편집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3. 인과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허구적 상관(spurious correlation) 관계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가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허구적 상관의 대표적인 예로 “사람들이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살인율이 올라간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범죄율 내지 살인률 사이에는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데, 두 가지 데이터를 모아보면 상관 관계가 발견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죠. 더운 여름에는 아이스크림 소비가 늘고, 동시에 범죄도 더 빈번하게 일어나 살인 사건도 많아지는 겁니다. 계절이라는 요소를 쏙 빼놓고 아이스크림 소비량과 살인율을 연관짓는 건 잘못된 결론이라 할 수 있죠. 맨하탄을 비롯한 뉴욕 거리 곳곳에서 촬영했다는 이 영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오류가 발견됩니다. 정말 뉴욕 구석구석을 골고루 누빈 게 아니라 이 여성이 할렘가나 흑인 밀집지역을 골라서 거닐며 영상을 찍었을 것 같은 의구심이 들 정도로 2분 길이 영상에 등장하는 25개 장면 가운데 59%가 할렘에서 찍혔습니다. 할렘이 뉴욕시의 59%를 차지하는 게 아니니, 할렘 지역과 흑인 밀집지역이 과다 대표되고 있는 셈이죠.

이번에는 첫 번째 가설입니다. 유색인종이 실제로 더 많이 희롱 섞인 발언을 하거나 여성에게 집적거린다는 인식은 엄격하게 모은 데이터로 증명된 사실에 뿌리를 두기보다는 개개인이 겪은 일화와 거기서 비롯된 편견에 기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백인 남성은 그냥 남성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지만, 흑인 남성은 피부색이 두드러지게 각인되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파편적인 일화가 모이고 쌓인다고 해서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불러서는 안 됩니다. 엄격한 방법을 동원한 검증이 필요한 지점이지만, 이 영상은 그런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고, 소셜미디어 상의 적잖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견과 결부시켜 이 영상을 해석한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번째 가설에 대한 사실관계를 살펴보겠습니다. 영상 제작자들은 다음과 같은 해명을 합니다. “실제로 백인 남성들 가운데서도 적잖은 희롱, 집적임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중 다수가 사이렌이 울리거나 주변의 공사 현장 소음 때문에 음성이 제대로 녹음이 안 돼서 편집 과정에서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흑인이 많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 실제 일어난 일을 적절하게 설명하는 건 아닐 수 있다.” 이에 대해 진솔한 해명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저는 좀 더 엄격한 잣대를 통해 이 연구의 질을 높이려 했다면, 이런 해명을 다는 데 그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좀 더 적절히 ‘모든 인종’, ‘뭇’ 남성이 실제 희롱이 일어나는 비율에 부합하게 등장하는 영상을 새로 찍어서라도 이런 방법상의 문제를 해결했어야 합니다.

이번 연구방법의 오류는 무엇보다도 이 영상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려는 목적(go viral)으로 제작되었다는 데서 비롯된 측면도 무척 큽니다.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갖고 사실관계를 잘라붙이거나 왜곡한 건 아니지만, 촬영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를 덮어놓고 영상을 편집하고 나니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편견에 부합하는 결과(주로 흑인 남성들이 희롱을 걸어오는 장면의 반복)가 나왔고, 세간의 이목을 끌기에 더욱 적합한 영상을 제작하게 된 겁니다. 원래 목적을 달성했는지만 놓고 이 영상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면 분명 성공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엄격한 연구 방법의 잣대를 갖고 영상을 제작했는지를 판단한다면, 이 영상은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Medium, Zeynep Tufekci 교수)

글을 추천해주신 분: 김낙호(미디어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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