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축구장에선 공격 축구가 통한다?
2014년 10월 31일  |  By:   |  스포츠  |  No Comment

지난 일요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토트넘 핫스퍼를 이끄는 포체티노(Mauricio Pochettino) 감독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2:1로 패한 뒤 홈구장인 화이트하트레인(White Hart Lane)경기장이 좁아서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다소 색다른 패인을 꼽았습니다.

“토트넘은 선수들이 넓게 벌려서서 공간을 넓게 활용하며 공격을 전개하는 팀입니다. 그런데 화이트하트레인 경기장은 좁아서 자기 진영 깊숙히 눌러앉아 수비를 펼치는 팀에게 유리해요. 화이트하트레인을 찾은 원정팀들은 대개 수비 진영에 잔뜩 웅크리고 실점하지 않으려는 경기를 펼칩니다. 그러면 경기장을 넓게 쓰며 틈을 찾아야 하는 토트넘은 좁은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좀처럼 공간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요.”

원래 축구장의 길이와 넓이에 대한 규정은 다소 느슨했습니다. 각자 경기장 부지 사정에 맞춰, 또는 경기 스타일이나 관중석 설계에 따라 좌우길이 100~130 야드, 골라인 길이(너비) 45~90 야드 사이에서 경기장을 지었습니다. (1야드는 약 0.91미터) 국제축구연맹 규격에 따라 최근 지어진 경기장들은 대부분 좌우 길이 105m, 골라인 길이 68m 규격을 따르고 있지만, 예전에 지어진 경기장은 영국의 도량형에 따라 야드로 규격을 잡았기 때문에 길이와 너비를 미터로 재보면 소수점까지 나오는 곳도 있는 등 너비가 제각각인 게 사실입니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2년 전 축구장 길이와 넓이를 국제축구연맹 규격에 맞춰 좌우 길이 105m, 골라인 길이 68m로 규격화했지만, 사정상 이를 그대로 맞추기 어려운 구단들에게는 예외를 허용했습니다. 현재 리그의 20개 구단 가운데 10개 구단의 홈구장은 이 규격에 꼭 맞고, 나머지 10개 구장은 조금씩 길이와 너비가 다른데, 화이트하트레인은 좌우 길이 100m, 골라인 길이 67m로 작은 구장에 속합니다.

이론적으로 넓은 구장에서 공격 축구가 힘을 얻는다는 지적은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구장들의 규격이 대개 통일되면서 몇 미터 차이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또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포체티노 감독과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명장이자 공격축구의 대가인 비엘사(Marcelo Bielsa) 감독은 원정팀과 경기를 치르기 전에 직접 피치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보폭으로 길이를 가늠해보곤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알려진 규격과 실제 경기장 길이, 너비가 일치하는지, 아니면 혹시 원정팀이 공격축구로 무장한 자신의 팀과 경기 전에 몰래 경기장을 살짝 줄여놨는지 직접 확인해본 것이죠. 지금으로부터 27년 전, 어떤 의미에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 할 수 있는 1987년 유로피안 컵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클럽인 레인저스(Rangers)가 우크라이나의 디나모 키에프(Dynamo Kiev)와 치렀던 2차전 홈경기에서 레인저스의 수니스(Graeme Souness) 감독은 디나모 키에프의 측면 공격수들의 파괴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기 전날 밤사이 터치라인을 확 줄여서 새로 그어버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냅니다. 경기장 너비는 최소 기준만 넘으면 된다는 다소 느슨하던 규정을 교묘하게 이용한 일종의 꼼수였습니다. 경기 전날 연습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경기장이 경기 당일날은 골대에서 15걸음 정도만 가면 터치라인이 나올 만큼 줄어들자 디나모 키에프는 장기인 측면 공격을 전혀 살리지 못했습니다. 경기는 레인저스의 2:0 승리로 끝났습니다.

발빠른 공격수와 많은 패스를 통해 공간을 창출하며 공격을 하는 아스널(Arsenal)의 벵거(Arsène Wenger) 감독도 과거 아스널이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하이버리(Highbury) 구장이 좁아서 아스널 특유의 플레이를 잘 펼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자주 토로했습니다. 반대로 우월한 신체조건과 몸싸움 능력을 바탕으로 하는 선 굵은 축구를 즐기는 스토크시티의 홈구장은 프리미어리그 20개 구장 가운데 가장 좁습니다. 과거 크로스에 가까운 효과를 지니는 긴 던지기를 즐겨 하던 델랍(Rory Delap) 선수가 활약할 때 좁은 구장은 큰 도움이 되기도 했죠. 스토크시티는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던 2011-12 시즌에 유럽축구연맹의 더 엄격한 규정에 따라 경기장을 넓혀 터치라인을 새로 그려야 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차이는 대체로 크지 않습니다. 또한 프로축구 팀에서 뛰는 선수들은 경기장 조건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 구장의 길이, 너비가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리그에서는 여전히 구장이 넓으면 더 많이 뛰고 공격적인 성향의 팀이 유리하겠지만요.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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