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정면으로 맞서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2014년 9월 26일  |  By:   |  과학, 칼럼  |  No Comment

사람들은 끔찍한 기억, 지독한 트라우마를 물리치는 길은 결국 고통스럽더라도 아픈 기억을 꺼내어 당당히 맞서는 방법 뿐이라고들 말합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마시멜로 테스트로 유명한 심리학자 월터 미셀(Walter Mischel)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섣불리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건 상태를 걷잡을 수 없이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미셀이 영영 트라우마를 남긴 끔찍한 사건을 영영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놓아야 한다고 말한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면 트라우마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야기를 할 준비가 안 되어있을 때 기억을 끄집어냈다가 끔찍한 악몽이 눈 앞에서 재현되는 것 같은 공포감에 몸서리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심리 치료를 받는 상대가 저에게 트라우마를 털어놓을 때 반드시 끝까지 제 눈을 보고 이야기하라고 당부합니다. 끔직했던 일은 어쨌든 과거의 일일 뿐 지금은 내가 당신과 함께 있고 이 과거는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기에 따라 충분히 과거로 흘려보내버릴 수 있는 기억이라는 걸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미셀도 과거의 기억을 제3자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이는 더 이상 트라우마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상담을 할 때 환자들로 하여금 트라우마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훌륭한 조력자 역할을 곧잘 합니다.

아픈 기억을 세심하지 않게 마구 끄집어내는 것 역시 현명한 처사가 아닙니다. 이는 마치 모기에 물린 곳이 가렵다고 끝없이 긁어대봤자 더 붓고 더 가렵고 안 걸려도 되는 염증에까지 걸릴 수 있다는 이치와도 비슷합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끔찍했던 과거의 어느 장면 속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어렸을 때 전쟁통에 집 밖에 나갔다가 부상을 당했던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이는 아마도 이 기억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했을 때 집 밖으로 좀처럼 나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이 지나면 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거리가 안전한데도 왜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위험한지 알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기만 하는 겁니다. 과거의 기억과 대면하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어떻게 이를 끄집어내어 상처를 악화시키지 않고 아물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결국 늘 올바른 해결책은 없는 셈이죠. 네, 복잡하죠. 사람의 마음이란 다 그런 거 아닐까요? (Guardian)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