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영화제를 거부해야 할까요?
2014년 8월 21일  |  By:   |  문화, 세계  |  No Comment

[역자주: 최근 한국에서 이스라엘 영화 보이콧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주 비슷한 논쟁이 영국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양상으로 토론이 전개된 영국 유대인 영화제 보이콧 찬반 논쟁을 소개합니다.]

지난 8월 초 런던 트라이시클 극장은 11월 개최되는 유대인 영화제와 관련해 영화제 조직위원회 측에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후원을 받는 걸 재고(reconsider)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트라이시클 극장 예술 감독은 “이스라엘과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볼때, 영화제가 현 갈등 당사자 한쪽에게 후원받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대사관) 후원 자금을 우리 극장 자체 비용으로 바꿀 것”을 권했습니다. 이에 유대인 영화제 측은 “용납하기 힘든” 요구라며 트라이시클 극장 상영을 취소했습니다.

써니 훈달(기자, 학자): 최근 한 친구가 “힘든 결정에 대한 가이드”라는 글을 썼습니다. “인권을 체계적으로 학대하는 정부로부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떤 후원도 받지 마라”고 시작하는 글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주 적절한 사례 아닐까요.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 주민 이동 자유를 차단하고, 식량, 생필품, 일자리, 식수 공급까지 봉쇄하며, 국제법으로 금지된 정착촌을 끊임없이 건설하고 평화적인 방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인권단체 <휴먼 라이트 와치>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한목소리로 이스라엘이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규탄했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런 맥락에서, 유대인 영화제가 이스라엘 대사관으로부터 후원을 받는다는 점에 논란의 단초를 본 트라이시클 극장 측 판단은 정당합니다. 후원을 받게 되면 가자 사태에서 어느 한쪽 편을 든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특히 극장 측이 희생을 무릅쓰고 유대인 영화제 위원회에 이스라엘 대사관 자금 대신 다른 대안을 주선해 주려 애쓴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이걸 “유대인 배척론”이라며 비난하는 건 논점을 빗나간 것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반유대주의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잘 압니다. 공동체간에 대화가 이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세탁할 수는 없습니다.

닉 코헨(주간지 <옵저버> 기고가): 트라이시클 극장의 조치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훈달 씨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인종주의 조짐이 있다고 봅니다. 왜 오직 유대인 영화제만 정치적 시험을 통과해야 할까요. 과거 유대인 영화제 상영작 중엔 이스라엘 정부나 근본주의 유대교를 비판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트라이시클 극장이 지금껏 다른 단체에 문화 관료 집단의 정치성에 맞춰 신념을 조정하거나 후원을 포기하도록 강요한 적이 있었나요? 물론 전혀 없었죠. 과거 트라이시클 극장은 런던 아시아 영화제를 개최한 적 있습니다. 그 영화제는 인도 정부로부터 후원을 받았는데, 인도 정부는 카슈미르에서 인권을 체계적으로 학대했습니다. 또 트라이시클 극장 자신은 영국 정부로부터 자금을 받고 있는데, 영국 정부는 트라이시클 이사회와 소속 작가들이 “불법적”이라고 규탄했던, 끔찍한 민간인 사상자를 낸 이라크 전쟁을 함께한 정부입니다.
만약 누가 트라이시클 극장이 영국 정부 산하 문화위원회로부터 받는 예산 72만 파운드를 거부하라고 요구하면 어떻습니까? 이에 비하면 이스라엘 대사관이 내는 1천4백 파운드는 쥐꼬리만 한 건데요. 왜 아시아 정부도 되고 영국 정부도 되는데, 유대인만 문제가 되나요?

써니 훈달: 카슈미르나 이라크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도나 영국 정부의 과거 인권 학대에 대해 면죄부를 주려는 게 아닙니다. 핵심은 트라이시클 극장이 “현재 진행 중인 분쟁”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극장 측은 유대인영화제와 관련된 상황이 향후 몇 달 안에 바뀔 수도 있다고 명백히 밝혔습니다. 카슈미르에 지금 현재 진행중인 분쟁이 있는 게 아니고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십여 년 전보다 지금 상황이 더 나아졌습니다. 또 영국 시민은 시위나 투표를 통해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영국 정부에 항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를 견제할 수단이 아주 제한적이고, 보이콧은 그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일 뿐입니다.
코헨 씨, 당신은 이란 방송국 <프레스 TV> 보이콧을 옹호한 적 있습니다. 과거에 <러시아 투데이>가 푸틴 정부의 후원을 받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 지침을 따를 거라며 비판한 적도 있죠. 당신이 이란이나 러시아만 차별한다고 사람들이 비판한다면 어떻습니까? 시리아, 하마스, 러시아 정부의 자금을 거절하는 단체가 있다면 당신이 갈채를 보낼 거라고 확신합니다.

닉 코헨: 저는 <프레스 TV> 방송 금지를 옹호한 게 아닙니다. 저는 규제 당국이 공명정대한 기준에 맞춰 심사하고, <프레스 TV>가 그 기준을 못 맞추면 방송 면허를 취소해야 한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공정한 규칙이 파기되어 <Fox TV>의 영국식 버전이 허용된다면, 저는 그런 저질 프로그램을 지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푸틴이 밉다고 러시아 발레단 공연을 금지한다면 그런 결정을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언급한 “현재 진행 중인 분쟁”에 관해서 말하자면, 영국이 현재도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군요. 어떻게 트라이시클 극장이 영국 정부 자금을 받을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제 주장의 핵심은, 문화 영역이 정치 논리에 희생되지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는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고귀한 이념을 당신이나 트라이시클 극장이 위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혹시 전에 유대인 영화제를 본 적 있었나요. 만약 훈달 씨가 영화제를 봤더라면 후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트라이시클 극장의 이중잣대 때문에 당신은 그 28편의 영화를 볼 수 없게 됐습니다. 당신이 이 피해를 안타까워하길 바랍니다.

써니 훈달: 물론 <프레스 TV>와 <러시아 투데이>는 규정을 따라야 겠죠. 하지만 코헨 씨는 그 방송사들이 정부의 자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지적했었지요. 당신은 또 사우디 정부가 영국 단체들을 후원하는 걸 비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비판을 본 사람이라면 코헨 씨가 인권을 학대하는(이스라엘이 그렇다는 점을 당신은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논란이 있는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아주 현명치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거라 믿을 겁니다. 유대인 영화제에 대해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저는 유대인 영화제를 못 보게 된 것이 유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국에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후원을 받는 행동이 어떤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공동체 관계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을 영화제 측이 보지 못하는 점 역시 슬픕니다. 진짜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 후원을 거절하거나 비판하는 게 반유대주의로 몰리고, 문화단체가 인권문제에서 도덕적 자세를 취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할 수 없다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닉 코헨: 훈달 씨는 유대인 영화제를 본 적 없는 게 분명하군요. 그래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만약 그 영화제가 이스라엘 정부의 선전 수단이라면 저는 영화제를 반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이 불안하게 기대고 있는 위험한 근거에 대해 경고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정치 논리가 문화를 지배하는 세상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BBC 입에 재갈을 채우려는 보수당 정치인은 당신의 그런 논리에 감사할 겁니다. 훈달 씨는 지난 노동당 정부의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었던 2010년 평등법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공공 기관은 유대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그 법 말입니다. 당신이 “공동체 관계”를 들먹였으므로,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하지요. 조지 갈로웨이가 브래포드를 이른바 “이스라엘 프리 존(free zone)”이라고 부르며 지하드 깃발을 들고 선언했을 때부터, 반유대주의는 우리 안에 위험하게 커가고 있습니다. 장담하건데 유대인 영화제(이스라엘 영화제가 아닙니다)를 위협하는 어리석은 관료들을 옹호하면, 당신도 그 어리석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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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주: 이 논쟁 얼마 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협상이 진척되자 트라이시클 극장과 유대인 영화제 측은 협의 끝에 다시 영화제를 트라이시클 극장에서 열기로 합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