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 전 키커에게 다가가 말을 건 팀 크룰(Tim Krul)의 심리전은 정당했나?
2014년 7월 7일  |  By:   |  세계, 스포츠  |  No Comment

옮긴이: 브라질월드컵 8강전 네 경기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치러진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승부차기에서 네덜란드 골키퍼로 나선 팀 크룰(Tim Krul)이 코스타리카 선수들에게 다가가 무언가 말을 하며 자극하는 듯한 장면이 반복해서 연출됐습니다. 정당한 심리전일까요? 아니면 도를 넘은 반칙일까요? 프리랜서 스포츠칼럼니스트인 닉 밀러(Nick Miller)가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소개합니다.

네덜란드와 코스타리카의 연장전이 득점 없이 마무리되고 승부차기에 돌입하기 직전, 루이스 반할(Louis Van Gaal) 네덜란드 감독은 조별리그 세 경기를 포함해 5경기에서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온 주전 골키퍼 실러선(Jasper Cillessen)을 빼고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주전 골키퍼 팀 크룰(Tim Krul)을 투입합니다. 193cm라는 큰 키와 덩치가 골문을 꽉 차게 보일 것 같아 승부차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걸까요? 뉴캐슬에서 5년 동안 뛰면서 크룰은 총 20차례의 페널티킥 가운데 단 두 번을 막았을 뿐입니다. 데이터로도 승부차기를 위한 비장의 카드라고 보기 어려운 선수였죠. 그런데도 반할 감독은 크룰 카드를 꺼내 들었고,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팀 크룰이 직접 밝힌 비결은 뜻밖에 간단했습니다.

“상대방 선수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으려 했어요. (I psyched them out) 코스타리카 선수들이 16강전에서 그리스와 벌인 승부차기 영상을 보고 치밀하게 연구를 했죠. 상대방 선수들 마음에 들어가려고 노력했고, 어느 방향으로 찰지 이미 알고 있다고 공을 차기 전 상대방에게 말했죠. 이건 리그에서 프랭크 램파드(Frank Lampard, 첼시의 미드필더)에게도 써먹었던 방법인데 그때도 통했거든요. 이번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논란이 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경기 영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듯이 팀 크룰은 굉장히 확연하게, 거의 상대방 키커에게 소리를 질러대며 자극을 했습니다. 승부차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골키퍼들이 키커를 속이거나 부담을 주기 위해 손이나 발을 요란스레 움직인다거나 눈이 마주치면 갖은 표정을 짓는 등 수를 쓰긴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말을 거는 건 직설적인 심리전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규칙을 어긴 반칙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한 행동이었습니다. 심지어 지안카를로 곤잘레스(Giancarlo González)가 킥을 성공한 뒤에도 큰 소리로 “봐라, 내가 방향은 맞췄지 않느냐!”며 마치 곤잘레스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승부차기는 막는 쪽보다 차는 쪽에게 절대로 유리합니다. 통계적으로도 약 80% 가까운 키커가 슛을 성공하고, 물리적으로는 사실상 골키퍼가 공이 오는 걸 보고 몸을 날려서는 골을 막을 수 없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이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키커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막는 쪽은 ‘밑져야 본전”인데, 차는 쪽은 “못 넣기라도 하면 큰일”나는 거죠. 로베르토 바지오(Roberto Baggio, 이탈리아), 프랑코 바레시(Franco Baresi, 이탈리아), 미셸 플라티니(Michel Platini, 프랑스), 로날드 데부어(Ronald de Boer, 네덜란드), 로베르토 도나도니(Roberto Donadoni, 이탈리아), 안드리 셰브첸코(Andriy Shevchenko, 우크라이나), 스티븐 제라드(Steven Gerrard, 잉글랜드), 다비드 트레제게(David Trezeguet, 프랑스). 모두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선수들이지만, 모두 월드컵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하거나 골키퍼에게 막혔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승부차기에서 골을 못 막았다고 키퍼를 손가락질하는 팬은 드물지만, 실축을 했거나 키퍼에게 막힌 경우 그 기억은 상당히 오래 갑니다. 크룰은 이런 부담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코스타리카 선수들이 크룰이 실제로는 페널티킥을 잘 막는 키퍼가 아니라는 데이터를 알고 있었더라도, 승부차기 직전에 교체되어 들어온 골키퍼가 키도 커서 골문의 빈틈도 좀 작아보이는데, 화라도 난 것처럼 내가 어디로 찰지 알고 있다고 소리를 질러대니, 자신이 미리 마음 속으로 정해둔 방향에 갑자기 확신이 안 설 수 있는 거죠. 대부분 키커들은 미리 어느 쪽으로 찰지를 마음에 정하고 도움닫기를 시작합니다. 도움닫기부터 공을 차는 순간까지 (자신이 정해둔 방향에 대해) 조금이라도 망설여진다면, 아니 크룰이 떠들어댄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아서 집중이 잘 안 되기만 해도 크룰의 작전은 성공한 걸지도 모릅니다.

결과적으로 크룰과 반할 감독, 그리고 네덜란드는 승리하고 4강에 진출했습니다. 크룰의 행동은 조금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을 수는 있어도 반칙을 했다거나 페어플레이에 어긋난 행동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상대방 선수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교란하려는 행동은 코스타리카의 골키퍼 나바스(Keylor Navas)도 했기 때문이죠. 심리전의 영향이 만약 있었다면, 크룰이 좀더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를 활용했을 뿐입니다. 결국 페널티킥 상황에서 특출나지 않은 크룰을 대단한 비장의 카드인 것처럼 꺼내든 승부사 반할 감독의 작전이 맞아떨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크룰은 승부차기에서 집중력이 차지하는 엄청난 영향력을 감독의 지시에 따라 충분히 활용한 것이고요.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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