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설국열차 리뷰 (전문)
2014년 7월 3일  |  By:   |  문화, 한국  |  1 comment

[역자 주: 지난 6월27일 미국에서 봉준호 감독 영화 <설국열차>가 개봉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설국열차> 영화평은 국내 언론에 일부 문장이 인용된 바 있으나, 뉴스페퍼민트가 전문을 싣습니다.]

우화 한 편을 보고 싶은 기분인가요? 그럼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권합니다. 비현실적인 전제를 깔고 있음에도 실제 현실과 풍부하게 연결된 작품입니다. 지구에 새로운 빙하기가 발생하자, 인류는 겨우 수천 명이 살아 남았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어떤 열차 속에 갇히게 됩니다. 객실 속 생존자들은 견고한 계층으로 분리돼 있습니다. 열차 뒤쪽에는 벌레 갈아 만든 단백질 막대로 연명하는 민중이 있습니다. 열차 앞쪽에는 유복한 인간들이 학교, 나이트클럽, 신선한 음식 그리고 이 모든 걸 차지할 권리가 있다는 마음의 평안을 누리며 삽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기업가가 이 열차를 지휘하며, 반란 무리는 그의 권력과 그가 상징하는 극도의 불평등에 도전합니다.

물론, 여름 휴가철이니 액션 영화를 선호하는 분들이 더 많겠지요. <설국열차>는 그쪽 방면에도 만족스럽습니다. 영리한 심리스릴러 <마더>와 장엄한 괴수 영화 <괴물>을 만든 봉준호는, 자유로우면서도 엄격한 시각적 사고를 하는 감독입니다. 좁은 객실에서 격렬한 전투 장면을 연출했는가 하면, 열차가 눈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장면에선 속도감과 소음을 버무려, 섬뜩하고 가슴 저미는 고요를 보였습니다. 열차 속 폭력은 처음엔 익살로 시작했다 유혈참극으로 급변해 유머와 공포가 불안하게 뒤섞입니다. 봉 감독은 원작을 존중하면서도 자신 특유의 삐딱하면서도 인도주의적인 감수성으로 주제를 변색합니다.

만약 영화를 고를 때 연기력을 중요하게 보거나,  또는 일류 배우들이 장르 설정 아래 과장해 연기하는 걸 즐기는 분이라면, <설국열차>는 실망을 주지 않을 겁니다. 뒤쪽 칸 반란 지도자 커티스 역을 맡은 크리스 에번스는 꾀죄죄한 수염에 선원모를 써, 깔끔했던 캡틴 아메리카의 카리스마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에번스는 혼란 와중에도 절제를 잃지 않는 영웅적 면모를 보이느라, 그 혼란의 일부를 제공하는 다른 배우들보다는 흥미를 끌 여지가 적습니다. 커티스와 함께 반란에 가담한 옥타비아 스펜서, 존 허트, 제이미 벨 등은 공권력의 잔인함이 도를 넘자 끓어오르는 분노를 모아 폭동을 일으킵니다. 곤봉과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등장하지만, 봉준호의 악마는 절대 익명 뒤에 숨지 않습니다. 봉 감독은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얼굴들을 보여주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할만한 건 보철기와 우스꽝스런 안경 때문에 거의 알아보기 힘든 틸다 스윈턴입니다. 그녀는 수수께끼에 싸인 설계자이며, 말세의 독재자이자 신(神)인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커티스 일행은 열차 맨 앞 엔진 칸을 향하던 중 크로놀에 중독된 보안 전문가 민수(송강호 분)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와 합류합니다.

디스토피아 공상과학이 대부분 그렇듯, <설국열차>는 해석할 거리가 많습니다. 고속열차가 칙칙거리며 빙하를 달린다는 원작 만화엔 동화적 매력이 있는데, 이는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폴라 익스프레스>와 스타일에서 유사합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무엇보다 흥미를 느끼는 것은 기술과 사회 구조라는 측면에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작동할지 상상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싸움과 음모의 에피소드에는 꼭 해설 덩어리가 딸려 있습니다. 어떤 장면은 이 여정의 시작(18년 전에 빙하기가 시작됐습니다)을 환기하고, 어떤 장면은 열차 바깥 상태를 측정하며, 어떤 장면은 이 여정이 끝날것인지, 끝난다면 언제 끝날지를 알 단서를 제공합니다.

때때로, <설국열차>는 테드 길리엄 감독의 <브라질>을 연상시킵니다. 둘 다 스팀펑크(사이버펑크에 대비되는 말로 19세기 유럽 풍경을 배경으로 한 SF 장르) 배경에, 전체주의 기업이 권력을 행사하는 음산한 세상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인간 본성에 관해 영화가 던지는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죽음에 처한 인류의 얼룩지고 기이한 양상에 비할 바는 못됩니다. 비록 이 작품이 스타일 모방이라든지 양심과 자의식이 어우러지는 측면에서 포스트모던하다고 할지라도, 이야기하는 방식에는 고전적인 뭔가가 있습니다. 긴 상영시간, 수많은 등장인물, 거의 오만에 가까운 야심찬 스케일을 가졌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많은 등장인물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과정으로 채워진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같은 70년대 구식 액션 영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무튼, 이건 칭찬입니다. 요즘 영화에서 전 지구적 재앙은 흔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지구 멸망, 인류 종말이 대여섯 번씩 반복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처럼 신선한 건 드뭅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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