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치하 학생운동가, 고문 기술자와 다시 만나다
2014년 4월 8일  |  By:   |  세계  |  No Comment

호세 마리아 갈란테(José María Galante) 씨는 프랑코 치하의 스페인에서 좌파 학생 운동을 하다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를 고문한 사람은 “빌리 더 키드”라는 별명으로 악명을 떨쳤던 고문 기술자 안토니오 곤잘레스 파체코(Antonio González Pacheco)였습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갈란테 씨는 그가 자신의 집에서 1마일도 떨어지지 않은 마드리드 시내 고급 아파트에서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났을 때 제 기분이 어땠느냐고요? 이 놈, 잡았다, 싶은 심정이었죠. 저도 화해니 뭐니 다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 읽지도 않은 페이지를 넘길 수는 없는 일이죠.” 갈란테 씨의 말입니다.

스페인 국민들은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타협과 양보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불만도 사회 곳곳에 남아있죠. 프랑코가 사망한 이후 나온 주요 타협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면법입니다. 모든 것을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취지에서 나온 법으로, 이 법에 따라 좌우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면을 받았습니다. 갈란테 씨와 같은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 길이 없었죠. 그래서 나온 방법이 이런 사건을 국제법의 보편적 관할권 법칙에 따라 외국 법정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현재 아르헨티나 법원은 파체코 등 두 사람을 송환할 것을 스페인 당국에 요청한 상태입니다. 스페인 법원이 자국민을 넘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번 사건은 스페인 사회의 해묵은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오늘날 스페인 사회 각계에는 여전히 프랑코 정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한 사회당 소속의 국회의원조차 이런 식으로 사면법에 예외를 인정하다가는 끝이 없기 때문에 파체코를 송환하는 것은 스페인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죠. 하지만 UN의 의견은 또 다릅니다. 스페인이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근현대사의 문제들을 잘 해결하지 못했다며, 프랑코 정권 당시의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스페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프랑코는 현대판 히틀러나 무솔리니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지만, 그의 유산은 훨씬 복잡하고 이에 대한 평가 또한 굉장히 엇갈립니다. 파체코의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프랑코 정권의 유산을 옹호하고 보존하려는 프랑코 재단 본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프랑코는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였고 죽는 날까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재단의 대변인을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프랑코는 독재자가 아니었다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역사에서 정당성을 박탈하려하는 좌파들의 시도”라고 잘라 말합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프랑코 시대에 시민의 자유가 박탈되었고 공포정치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 정권의 만행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동시에 몇 해 전에는 한 판사가 프랑코 정권의 반인도 범죄에 대한 재판를 진행하려다가 우익 단체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다른 사건에서의 불법 도청 혐의로 사직하는 사태가 있었죠. 그 재판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판사가 정치 싸움의 희생자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파체코 재판를 두고도 스페인 사회는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갈란테 씨가 고초를 겪은 때는 프랑코 정권의 공포 정치가 막을 내렸다고 여겨졌던 70년대였습니다. 그러나 갈란테 씨는 물고문과 성기 부위 구타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파체코가 완전히 법 위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회상합니다. 정보를 얻기 위한 고문도 아닌, 오로지 사람을 때리기 위한 고문이었다고요. 갈렌테씨와 다른 피해자들은 수 년 간 파체코를 추적한 끝에 그가 보안업체를 차리고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자택 주소까지 알아낸 후, 피해자들은 당했던 일을 고스란히 되갚아줬습니다. “무리지어 집 근처에 서있다가 그가 눈에 들어오면 따라갔죠. 뛰어서 도망가길래 우리도 조깅하는 척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NY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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