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100년간의 추락
2014년 2월 27일  |  By:   |  Economy / Business  |  3 Comments

100여년 전 아르헨티나는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40년간 미국보다 높은 경제 성장을 보였고 GDP는 독일, 프랑스, 혹은 이탈리아보다 높았습니다. 비옥한 농지와 따듯한 날씨, 새로운 민주주의, 그리고 교육 받은 시민들, 그리고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자랑이었습니다. 이민자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리오넬 메시와 같이 아르헨티나를 사랑할 이유들이 여전히 있지만 아르헨티나의 명성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칠레나 우루과이와 같이 아르헨티나가 한 때는 자신들보다 못 산다고 여겼던 나라들이 오늘날에는 더 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한 나라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을 전체주의나 극단주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약한 제도나 무능력한 정치인, 혹은 소수의 자원에 의존하는 경제만으로도 한 나라가 지속해서 추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모든 나라가 고유의 경험을 가지고 있듯이 아르헨티나의 경험 역시 고유합니다. 운도 나빴습니다. 20세기 초, 수출 위주의 경제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보호 무역이 강화되면서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또 무역 상대로 영국에 너무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페론 대통령은 지나친 인기 영합 주의 정책을 펼쳤고 1980년대 금융 위기 이후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는 시장을 개방하고 민영화를 지지하는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운이 없었던 것만이 아르헨티나 추락의 원인은 아닙니다.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부분도 큽니다. 경제 구조와 정치, 그리고 개혁을 미뤄왔던 것이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상품(commodities)에 너무 의존한 것이 아르헨티나 경제에는 저주가 되었습니다. 100년 전, 아르헨티나는 가장 빨리 신 기술을 받아들이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페론 정부는 국내의 비효율적인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 보호무역 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또 아르헨티나는 군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강력한 민주주의 제도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잦은 쿠데타에 시달렸습니다. 정치인들은 부패했고 아르헨티나는 세계 투명성 지수에서 106위에 그치고 있습니다. 안정되고 강한 제도를 만드는 일은 더딘 과정을 견뎌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정치인들은 이를 버리고 빠른 해결책을 찾느라 혼란만 가중시켰습니다. 다른 나라들 역시 아르헨티나의 경험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험이 주는 교훈은 제대로 된 정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뒤 세계는 또 다른 아르헨티나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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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commodities 는 brand power가 약해서 price premium을 붙이기가 힘든 비가공 (또는 준가공) 농산물, 해산물, 광물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밀, 쌀, 쇠고기, 석탄, 원유 등이 대표적이죠. 여기선 아마 아르헨티나의 밀과 쇠고기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저부가가치 1차산업 생산물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네요.

  • 익명

    윗분 말씀에 +1
    “재료를 이용해 상품을 만든다”고 할 때 그 재료가 commodity이므로 ‘원자재’ 같은 말로 지칭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 익명

    원자재가격 하기엔 좀 안 맞는 구석도 있어요. Commodities는 생필품이기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