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버려야 할 가난에 대한 편견들
2014년 1월 20일  |  By:   |  세계  |  5 Comments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연례 서신 내용의 일부가 월스트리트저널에 먼저 실렸습니다.

속도가 더디고 부침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는 조금씩 가난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25년 전과 비교해보면 전 세계의 극빈층은 절반으로 줄었고 영아사망률도 크게 떨어졌으며, 선진국의 원조 없이는 국민들의 끼니도 해결할 수 없던 나라들이 이제는 먹고 사는 걱정은 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명백한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 걸까요? 그건 사람들이 가난에 대해 여전히 갖고 있는 세 가지 편견 탓입니다.

1. 가난한 나라는 계속해서 가난하다? 가난의 굴레에 대한 편견

몇십 년 전 가난했던 나라들이 이제는 어엿한 중산층 국가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멕시코시티, 나이로비, 상하이 등 주요도시들의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비교해 보세요. 높은 건물, 잘 닦인 도로, 깨끗한 상수도, 숨쉬기 훨씬 편한 공기까지 여러 면에서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개개인의 가난을 완전히 퇴치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 1인당 소득은 (물가 상승을 감안해도) 높아졌습니다. 지난 반세기 사이에 소득이 몇 배씩 늘어난 중국, 인도, 브라질을 비롯한 중산층 국가의 국민들이 어느덧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아프리카 전체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 가까이 ($1,300 -> $2,200) 상승했고, 지난 5년 사이 가장 빠른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나라 10개국 가운데 무려 일곱 나라가 아프리카 대륙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상하기로는 오는 2035년이면 전 세계에 국민 대다수의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 나라는 없을 겁니다. 물론 전쟁이나 정치적, 지리적인 이유로 폐쇄적인 나라들(북한, 중앙아프리카의 내륙국가들), 그리고 아이티 정도는 예외가 될 수도 있겠지만요.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이 중산층 국가 대열에 합류할 겁니다.

2. 해외 원조는 돈 낭비다? 원조 액수, 얼마나 될까?

(미국인들에게) 이 질문부터 해보죠. “정부 예산 가운데 해외 원조에 쓰이는 돈은 얼마나 될까요?” 적지 않은 수의 미국인들이 25%라고 답합니다. 실제로는 1%도 안 됩니다. 정부 예산 가운데 해외원조 지출이 가장 통 큰 노르웨이도 3%가 안 됩니다. 물론 미국 정부 예산의 1%만 해도 액수로는 큰 돈이겠지만, 1/4을 원조로 쓰고 있다는 대중들의 생각에는 근거가 부족한 셈이죠. 미국 정부가 가난한 나라에 대한 식량 원조를 포함한 건강 원조금(health aid)으로 쓰는 돈은 자국 농업 보조금의 절반도 안 되고, 국방예산의 1/60도 안 됩니다. 해외 원조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소중한 돈이 필요한 데 쓰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굶주린 아이에게 밥과 약을 주기 위해 지원된 돈이 독재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거죠. 하지만 이런 일은 과거 냉전시대 반공 국가의 독재자들에게 정치적인 이유로 전달됐던 원조금에나 해당되는 얘기고 지금의 부패 정도는 그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해졌습니다. 선진국의 기업, 공직에서도 부패가 없진 않잖아요?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해외 원조에 쓰이는 돈이 단 1달러라도 허투루 쓰인다면 원조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리노이 주의 최근 주지사 7명 가운데 4명이 부패로 옥살이를 했습니다. 시민들의 세금을 허투루 쓴 거죠. 그렇다고 일리노이 주에 있는 학교를 닫고, 도로를 폐쇄해야 하나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해외 원조는 돈 낭비가 아니라 지구상에 살아가는 같은 인류의 생명을 살려내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소중한 투자입니다.

3. (원조 덕분에) 사망률이 낮아지면 인구 과밀 문제가 생긴다?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우려한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Thomas Malthus)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지구가 이를 지탱하지 못하게 되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걱정이 지나치면 어차피 평생 굶으면서 살아갈 운명인 환경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려서 죽는 것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에 이르기도 하죠. 같은 인류의 생명에 둔감해지는 겁니다. 직관적으로는 쉽게 납득이 안 갈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가난한 나라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서 사망률을 낮추면 인구 성장률도 오히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개 사망률과 인구성장률은 동시에 높은 경우가 많은데,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훨씬 많이 낳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1960년대 들어 태국의 영아사망률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태국 정부는 가족 계획을 대대적으로 장려했고, 20년 만에 출산율은 6에서 2로 낮아졌습니다. 오늘날 태국의 영아사망률은 미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출산율은 여성 한 명 당 1.6입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사회가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 출산율은 저절로 낮아지고 인구 과밀 문제도 해결되는 겁니다. 오히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남녀가 자기 의지대로 피임을 결정할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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