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웰컴재단 과학저술 전문가부문 수상작: 아메리카의 복수
2013년 11월 4일  |  By:   |  과학  |  No Comment

1490년대 유럽에서는 새로운 전염병이 등장했습니다. 이 병의 전파속도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프랑스 찰스 8세가 나폴리 정복을 위해 보낸 용병에게 처음 발견된 이 병은 이후 5년만에 전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휩쓸었습니다. 이 병의 첫번째 징후는 성기에 생기는 피부궤양(chancre)입니다. 그리고 이 질병은 환자를 고문하는 것과 같은 다음 단계로 천천히 진행됩니다. 환자의 신체는 반점과 기형으로 서서히 망가지게 되고, 이들은 광기 또한 드러내게 됩니다. 결국 이들은 끔찍한 외모와 함께 정신이상을 보이며 죽음에 이르르게 됩니다.

한때 이 병은 프랑스병으로 불렸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이를 나폴리병이라고 불렀습니다. 러시아 인들은 폴라드병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1530년, 이탈리아의 내과의사는 이 병에 시필리스(매독, Syphilis)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시필리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로를 화나게 한 댓가로 미남에서 추남이 되어버린 양치기입니다. 그리고 이 15세기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이름없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병은 시필리스라는, 어떤 나라의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병의 다양한 이름이 의미하듯이 그 시대에는 이 병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 병은 프랑스 사람이 가져왔을까요? 혹은 속세의 죄를 벌하기 위한 신의 형벌이었을까요?

곧 한 무리의 학자들은 한 가지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콜럼버스의 역사적인 신세계 발견은 1492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용병이 자신의 성기에서 피부궤양을 발견한 것은 1494년이었습니다. 혹시 콜럼버스가 그가 유럽으로 돌아올 때 이 병을 자신의 함대와 함께 가져온 것이 아닐까요?

1500년 이후 우리는 매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이 병의 원인은 트레포네마 팔리덤(Treponema pallidum)이라는 나선형의 박테리아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박테리아에를 치료하는 항생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19세기까지 치료약으로 사용된 또 다른 독극물인 수은을 더 이상 처방받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과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들은 여전히 매독의 기원에 대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정말 그 박테리아를 아메리카에서 가지고 왔을까요? 또는 단지 이 병이 발견된 것이 시기상의 우연한 일치일 뿐일까요? 어쩌면 매독은 계속 존재해 왔고, 단지 의사들이 매독과 이와 비슷한 신체변형을 일으키는 문둥병을 구분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콜럼버스(Columbian)” 가설은 콜럼버스가 이 병의 원인이라는 가설이며 “선-콜럼버스(pre-Columbian)”가설은 그가 이 병과 무관하다는 가설입니다.

이 두 가설의 검증은 아직 남아있는 그 시대의 유골들을 이용해 가능합니다. 매독은 말기에 이르면 뼈를 비정상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콜럼버스가 유럽에 돌아오기 전 부터 매독이 유럽에 있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콜럼버스 이전에 묻힌 것이 확실한 유럽인의 유골 중 매독의 흔적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은 생각만큼 단순한 일은 아닙니다. 매독이 아메리카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은 쉽게 증명되었습니다. 콜럼버스가 태어나기 100년 전의 인디언들의 무덤에서 매독임이 분명한 시체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단지 소수의 가능한 후보들만이 지금까지 발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된 50여개의 유골이 정말 선-콜럼버스가설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우선 이들이 분명히 매독에 걸렸다는 것을 확신하기에는 이들의 수가 너무 적습니다. 세상에는 뼈의 변형을 가져오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골들의 연대측정 역시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생선 중심의 식단은 유골의 연대측정에 약 100년의 오차를 만듭니다.

2011년, 엄밀한 기준을 가지고 이들 후보군에 대해 연대 및 매독의 유무를 측정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떤 유골도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유골은 두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기에는 불확실한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연구는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이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매독을 옮겨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물론, 트레포네마 팔리둠이 콜럼버스에 의해 대서양을 건넌 유일한 미생물은 아닙니다. 콜럼버스는 천연두, 홍역, 흑사병 등 수많은 병원균을 신세계로 가져갔고, 이로 인해 수백만명의 인디언들이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매독은 프랑스 병이나 폴란드 병이 아니었습니다. 이 병은 바로 아메리카의 복수였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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