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 향수, 이탈리아에서 살아나는 파시즘의 망령?
2013년 1월 2일  |  By:   |  세계  |  No Comment

매년 이맘때 이탈리아의 신문 가판대 한켠 달력 코너에는 ‘IL DUCE’라는 글자와 함께 군복을 입고 있는 한 사내의 사진이 실린 달력이 등장합니다. IL DUCE(일 두체, 최고통치자)는 파시즘을 창시하고 추축국의 일원으로 히틀러와 손 잡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에 참혹한 패배를 안겼던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칭호입니다. 아무도 안 살 것 같은 달력이지만 달력 제조사는 10년 전에 비하면 분명 수요가 늘었다고 말합니다.

독일처럼 나치의 유산을 철저히 청산하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고, 프랑스처럼 극우 세력을 극도로 경계하는 공화주의 전통도 없는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망령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습니다. 로마 남부의 한 지방정부가 무솔리니 치하 군부의 일원이었던 그라찌아니(Rodolfo Graziani) 장군의 묘를 관리하는 데 예산 12만 7천 유로(1억 8천만 원)를 책정했는데도 아무런 비판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나(Emilia Romagna) 지방에선 공항 이름을 무솔리니 공항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별다른 반대 없이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네오파시즘에 물든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무솔리니가 마치 이탈리아의 요순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자인 것처럼 미화되고 있습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무솔리니가 정적을 숙청하고 지방으로 유배보냈던 것을 두고 휴가를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고, 1994년과 2001년에는 우파 연정에 극우정당을 끼워넣기도 했습니다.

독일은 군소정당이 난립하다 나치의 등장으로 이어졌던 전간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을 교훈 삼아 총선에서 5% 이상 득표하지 못한 정당은 의회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치와 같은 극우정당의 의회 진출을 막기 위한 장치죠. 1945년 무솔리니가 공산주의 빨치산에게 총살당한 뒤 이탈리아에서도 1952년에 파시스트 정당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정당을 금지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논리에 가로막혀 해당 법은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무솔리니는 어느덧 체게바라나 헬로키티처럼 티셔츠 도안에도 버젓이 등장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당장 파시스트 정당이 이탈리아 정치무대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파시즘에 대한 충분한 성찰 없이 “그래도 경제는 살리지 않았나”, “그 때는 적어도 배고프진 않았어”라는 식의 향수만 자극하는 모습은 많은 이탈리아 시민들에게도 분명 불쾌함을 주고 있습니다. (Guard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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